AI가 반도체를 삼키는 방식 — 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 89조

삼성 영업이익 19배의 진짜 배경 — AI가 반도체를 삼키는 방식을 뜯어봤어요

엑스디노드 마케팅팀

읽는 시간 약

16분

89조 4,000억 원. 삼성전자가 지난 한 분기, 그러니까 2026년 4월부터 6월까지 딱 석 달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입니다. 1년 전 같은 기간(4조 7,000억 원)과 비교하면 약 19배, 정확히는 1,810% 늘어난 수치죠.

숫자가 워낙 커서 감이 잘 안 오실 수 있는데요. 이 영업이익은 엔비디아의 최근 분기 실적(535억 달러, 약 81조 원)마저 넘어섰습니다. AI 붐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그 엔비디아를, 한국의 메모리 회사가 한 분기 이익으로 앞선 겁니다.

그런데 이 숫자,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삼성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두 배로 판 것도, 신사업이 터진 것도 아닙니다. 답은 전부 반도체, 그중에서도 AI가 삼켜버린 메모리 시장에 있습니다.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게 왜 하필 AI와 맞물려 있는지를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89조 4,000억, 이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요

삼성전자는 2026년 7월 7일, 2분기 잠정 실적을 공시했습니다. 매출 171조 원, 영업이익 89조 4,000억 원.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29% 늘었고, 영업이익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1,810% 급증했습니다. 자세한 수치는 삼성전자 뉴스룸에서 공식 발표됐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실적의 무게 중심이에요. 사업부별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사 영업이익의 대부분이 반도체(DS) 부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파는 완제품 부문은 오히려 반도체 값이 오른 탓에 원가 부담을 안고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분석까지 나왔죠. 회사 전체를 반도체 하나가 끌어올린 셈입니다.

이게 얼마나 이례적인 기록이냐면, 이번 2분기 영업이익 한 번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삼성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만 146조 6,000억 원에 달합니다. 성과급 충당금 같은 회계 요인을 걷어내면 실질 이익은 이보다 더 컸을 거라는 분석도 있는데, 관련 내용은 비즈니스포스트 보도에서 다뤘습니다.

19배.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불어난 배수입니다. 이 한 숫자 안에 지금 반도체 시장의 온도가 전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왜 지금, 왜 하필 메모리 반도체일까요?

삼성전자 분기별 실적 추이

[삼성전자 분기별 실적 추이 출처]

3~4년마다 돌던 반도체 사이클이 깨졌습니다

반도체 업계에는 오래된 상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3~4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돈다는 겁니다. 값이 오르면 너도나도 증설하고, 공급이 넘치면 값이 떨어지고, 다시 감산하면 값이 오르고. 이 사이클을 예측하는 게 반도체 투자의 기본기였죠.

그런데 이번 호황은 그 주기 자체를 깨뜨렸습니다. 과거 사이클의 수요 동력이 PC와 스마트폰 소비였다면, 지금의 동력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입니다. 소비자가 폰을 몇 년에 한 번 바꾸는 수요와, 빅테크가 매 분기 수십조 원씩 쏟아붓는 인프라 투자는 규모도 지속성도 완전히 다릅니다.

가격 흐름의 모양도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값이 한 번 봉우리처럼 오른 뒤 꺾이는 단봉형이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한 차례 조정 뒤 다시 급등하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어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구조가 계속되니 값이 쉽게 내려앉지 못하는 겁니다.

시장 규모가 이 변화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성장해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전망의 근거는 뉴스핌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시장 조사 업체들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큰 폭으로 상향했고, 일부는 반도체 산업이 6년 연속 성장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쓸 수 있다고까지 내다봅니다.

업계에서 '슈퍼사이클'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단순히 값이 오른 게 아니라, 반도체를 사는 이유 자체가 바뀌었어요. 예전엔 '더 좋은 소비자 기기를 위해' 반도체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AI를 돌리기 위해'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AI가 필요로 하는 반도체의 양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Nomura에서 추정한 회사별 DRAM 마진율

[Nomura에서 추정한 회사별 DRAM 마진율 출처]

값이 오르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파는 시장

지금 메모리 시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가격 협상의 칼자루가 파는 쪽으로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오랫동안 메모리는 사는 쪽이 값을 후려치는 시장이었는데, 그 구도가 뒤집혔어요.

가격부터 보겠습니다. 2026년 2분기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전 분기 대비 각각 45~60%, 50~78%가량 올랐습니다. 서버용 고용량 D램은 앞선 분기에 이미 전 분기 대비 180% 폭등한 사례도 있었죠. 이 수치는 조선비즈 보도에 정리돼 있습니다. 노트북, PC, 서버 할 것 없이 메모리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의 원가가 동시에 뛰었습니다.

이 가격 상승이 회사 수익성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SK하이닉스가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SK하이닉스는 앞선 분기에 영업이익률 70%를 넘겼는데, 이는 엔비디아나 TSMC마저 웃도는 제조업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치예요. 물건을 만들 때마다 남는 이익의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입니다. 공식 실적은 SK하이닉스 뉴스룸에서 볼 수 있어요.

더 본질적인 문제는 물량입니다. 값이 비싸도 사겠다는데, 물건이 없습니다.

50%. 2026년 6월, 주요 고객사가 주문한 메모리 중 실제로 공급받은 비율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공급이 이렇게 막히면 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부 투자은행은 메모리 가격이 3분기에 2분기 대비 40~50% 더 오르고, 4분기에도 추가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2027년까지는 공급 부족이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죠.

그리고 이 상승분은 반도체에서 멈추지 않아요. 메모리가 들어가는 PC, 스마트폰, 서버의 최종 가격으로 번져 나가는 이른바 '칩플레이션(Chipflation)' 현상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컴퓨터 관련 부품 가격은 1년 새 20% 넘게 뛰었고,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PC·스마트폰용 칩 재고까지 고갈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이 흐름은 경향신문 보도에서 자세히 다뤘어요.

자, 여기까지가 '현황'입니다. 값이 오르고, 물량이 부족하고, 회사들이 역대급 돈을 법니다. 그런데 이 모든 소동의 진짜 원인, AI 이야기를 아직 제대로 안 했습니다. AI는 왜 이렇게까지 반도체를 빨아들이는 걸까요?



AI는 왜 이렇게 많은 반도체를 먹을까요

AI 서비스를 떠올리면 보통 화려한 응용 쪽이 먼저 그려집니다. 대화하는 챗봇, 그림을 그리는 모델, 문서를 찾아주는 검색. 그런데 이 서비스들이 실제로 돌아가려면 그 아래에 어마어마한 물리적 하드웨어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은 일반 서버의 2배에서 많게는 6배에 달합니다.

여기서 반도체를 두 갈래로 나눠보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하나는 연산을 담당하는 칩, 다른 하나는 데이터를 기억하고 나르는 칩입니다.

연산을 담당하는 대표 선수가 GPU예요. GPU는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병렬로 처리하는 연산 유닛을 잔뜩 모아둔 칩입니다. AI 모델이 하는 일이 결국 방대한 숫자 곱셈과 덧셈의 반복이라, 이걸 한꺼번에 처리하는 GPU가 AI의 두뇌 역할을 맡게 됐죠. 그리고 데이터를 기억하고 공급하는 쪽이 메모리, 그중 D램과 HBM입니다.

문제는 이 둘이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GPU만 많이 사도, 메모리만 많이 사도 AI는 제대로 돌지 않아요. 이게 왜 그런지는 최근 AI 수요의 성격 변화를 봐야 이해가 됩니다.

학습이 아니라 '추론·긴 컨텍스트·에이전트'가 수요를 키웠습니다

초기 AI 논의는 대체로 '학습' 중심이었습니다. 모델을 한 번 잘 훈련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연산이 필요한가, 이게 핵심 질문이었죠. 이 단계에서는 연산량, 즉 GPU 성능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2025년부터 실제로 폭발한 수요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대규모 추론(사용자 요청에 실시간으로 답하는 것), 점점 길어지는 컨텍스트(한 번에 처리하는 문맥의 길이), 스스로 여러 단계를 판단하는 AI 에이전트, 그리고 여러 형태의 데이터를 동시에 다루는 멀티모달. 이 작업들의 공통점은 연산보다 메모리의 용량과 속도에 성능이 묶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챗봇이 긴 대화의 앞부분을 계속 기억하면서 답하려면, 이미 처리한 내용을 메모리에 쌓아두고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때 GPU가 아무리 빨라도 메모리가 데이터를 제때 못 대주면 성능이 나오지 않아요. 이 흐름을 이비즈타임즈 분석은 오래전부터 컴퓨터 구조에서 예견돼 온 개념이 현실이 된 것이라고 짚습니다. 바로 메모리 월(Memory Wall)입니다.



GPU가 빨라질수록, 메모리가 발목을 잡습니다

'메모리 월'은 말 그대로 메모리가 벽처럼 성능을 가로막는 현상입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GPU와 메모리 사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야 해요.

GPU의 연산 유닛은 계산을 하려면 먼저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읽어와야 합니다. 계산이 끝나면 결과를 다시 메모리에 씁니다. 이 '읽고 쓰는 속도'를 메모리 대역폭이라고 부릅니다. 메모리에서 초당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옮길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값이죠.

여기서 병목이 생깁니다. GPU의 연산 능력은 세대를 거듭하며 무섭게 빨라졌는데,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속도가 그 발끝을 못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GPU의 연산 유닛이 데이터를 기다리며 노는 시간이 생깁니다. 비싼 GPU를 사놓고도 제 성능의 절반밖에 못 쓰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AI 서버의 성능이 단일 칩의 연산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 이동 효율로 좌우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AI 시대의 진짜 병목은 '얼마나 빨리 계산하느냐'에서 '얼마나 빨리 데이터를 대주느냐'로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AI 반도체 경쟁의 무게 중심이 연산 성능 단독 경쟁에서 데이터 이동 효율 경쟁으로 이동했습니다. GPU를 놀지 않게 만들려면, GPU 옆에 최대한 빠르고 넓은 메모리를 붙여야 합니다. 이 요구에 정확히 답한 물건이 바로 HBM이에요.



그래서 HBM이 AI 반도체의 심장이 됐습니다

HBM은 High Bandwidth Memory, 우리말로 옮기면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이름 그대로 데이터를 나르는 통로가 아주 넓은 메모리예요. 어떻게 통로를 넓혔을까요?

일반 D램은 칩을 평평하게 한 층으로 깝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를 미세한 구멍으로 수직 연결합니다. 그리고 이 적층 메모리를 GPU 바로 옆에 붙여요. 데이터가 오가는 거리를 극도로 줄이고, 동시에 열리는 통로 수를 크게 늘린 구조입니다. 그 결과 일반 메모리와는 차원이 다른 대역폭이 나옵니다. HBM의 구조와 원리는 KB 설명자료에 이해하기 쉽게 정리돼 있어요.

그래서 최신 AI 가속기는 GPU와 HBM이 사실상 한 몸으로 묶여 출하됩니다. GPU가 팔릴수록 HBM 수요가 같이 오르는 구조인 거죠. 세대가 올라갈 때마다 GPU 한 장에 붙는 HBM의 용량도 함께 커집니다.

가속기 세대

탑재 메모리

용량

H100 (Hopper)

HBM3

80GB

B200 (Blackwell)

HBM3E

192GB

Rubin (차세대)

HBM4

세대 전환

한 세대 만에 GPU 한 장의 HBM 용량이 80GB에서 192GB로 뛰었습니다. 가속기 출하량 자체도 늘어나는데, 그 위에 장당 메모리 용량까지 세대마다 커지니 메모리 수요는 두 배수의 곱으로 휘어 오릅니다. 한쪽 곡선만 보고 세운 예측이 줄줄이 빗나간 이유예요.

수요처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GPU뿐 아니라,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가 자체 설계한 맞춤형 AI 칩(ASIC)을 늘리면서 여기에 들어갈 HBM 수요까지 추가로 커지고 있어요. GPU든 자체 칩이든, AI를 돌리려면 결국 그 옆에 HBM을 붙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D램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차이

[D램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차이 출처]

한국 기업이 이 판을 쥐게 된 이유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 AI 붐의 주인공은 미국의 엔비디아인데, 왜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이렇게 큰돈을 벌까요? 답은 HBM 시장의 구조에 있습니다.

HBM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D램을 수직으로 정교하게 쌓고, 수율(정상 제품이 나오는 비율)을 확보하고, 발열과 패키징까지 모두 잡아야 하는 고난도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제대로 양산할 수 있는 회사가 사실상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세 곳뿐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두 회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죠.

기업

HBM 시장 점유율(2026년 1분기)

SK하이닉스

약 58%

삼성전자

약 21%

마이크론

약 21%

SK하이닉스가 절반이 넘는 점유율로 앞서 있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추격하는 구도입니다. 점유율 세부 흐름은 IT조선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세 회사 모두 2026년 생산 물량과 가격 계약을 사실상 완판한 상태라, 사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경쟁의 초점은 6세대인 HBM4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HBM4는 2026년 하반기부터 본격 출하되는데, 이 물량을 누가 먼저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앞으로의 점유율 판도를 가를 분수령으로 꼽힙니다. 삼성전자가 이 경쟁에서 반전을 노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HBM4 점유율 전쟁의 구도는 머니투데이 보도가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선 세대에서 뒤처졌던 삼성전자는 HBM4에서 수율을 끌어올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선두 지위를 지키기 위해 HBM4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세 번째 주자인 마이크론까지 2026년 물량을 이미 완판했다고 밝힌 상태라, 세 회사가 만드는 HBM을 두고 전 세계 AI 기업이 줄을 서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어요. AI 칩 한 장에 실리는 HBM 용량 자체가 세대마다 커지고 있어, 같은 수의 칩을 만들어도 필요한 메모리는 계속 늘어납니다.

정리하면, 한국 기업들은 AI 시대에 가장 병목이 심한 부품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GPU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그 옆에 붙일 HBM이 없으면 완성이 안 되니까요. 이 협상력이 89조라는 숫자의 밑바탕입니다.



AI 시대의 반도체는 '칩'이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꿰면 중요한 결론이 나옵니다. AI 반도체는 더 이상 GPU 한 장, 메모리 한 개의 성능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GPU와 HBM, 그리고 이 둘을 하나로 이어 붙이는 첨단 패키징 기술까지 결합된 시스템으로 평가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파운드리와 패키징입니다. GPU와 HBM을 하나의 칩처럼 붙이려면 이 둘을 정교하게 결합하는 첨단 패키징 공정이 필요한데, 이 라인을 대만의 TSMC가 사실상 주도하고 있어요. 첨단 패키징 라인 증설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공정이 병목이 되면 GPU도 HBM도 멀쩡한데 완제품이 안 나오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칩을 미세하게 새기는 파운드리 공정도 마찬가지입니다. AI 가속기의 두뇌에 해당하는 GPU는 최첨단 미세 공정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공정 역시 소수의 회사만 감당할 수 있어요. TSMC가 2nm급 최선단 공정을 앞세워 엔비디아·애플 같은 핵심 고객 물량을 사실상 독점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도 파운드리에서 이 격차를 좁히려 하고 있습니다. 연산을 새기는 공정, 데이터를 나르는 메모리, 둘을 잇는 패키징. 이 세 축이 전부 맞물려야 AI 가속기 한 대가 완성됩니다.

그래서 어느 한 단계에서 병목이 생기면 전체 공급이 막힙니다. GPU를 만들 수 있어도 HBM이 부족하면 완성이 안 되고, HBM이 있어도 둘을 붙이는 패키징 라인이 모자라면 출하가 밀립니다. 실제로 AI 가속기 공급 부족이 정점으로 치닫는 배경에는 이런 복합 병목이 있습니다. 이 구조는 조선비즈 분석이 잘 설명하고 있어요.

이 대목이 삼성 89조의 진짜 배경입니다. AI가 'GPU·HBM·패키징이 묶인 시스템'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시스템의 핵심 부품을 쥔 회사들의 협상력이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데이터 이동 효율이 AI 인프라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EBN 보도의 분석이 지금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요약합니다.

권력이 이동한 겁니다. 오랫동안 '사는 쪽'이 칼자루를 쥐던 메모리 시장에서, 이제 '만드는 쪽'이 값과 물량을 결정합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한 분기에 함께 수십조 원을 벌어들이는 건, 바로 이 권력 역전의 결과입니다.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CI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CI/사진=각사 제공]

그렇다면 이 사이클은 어디로 갈까요

여기까지 읽으면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 호황은 얼마나 갈까요? 슈퍼사이클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으려면, 이 상승이 한동안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시장의 시선이 마냥 낙관 일색인 것만은 아닙니다.

경계 신호는 분명히 있습니다. 일부 증권가는 HBM 가격이 어느 시점부터 두 자릿수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AI 투자 열기가 조금이라도 식으면, 지금의 수요 곡선이 예상보다 빠르게 꺾일 위험도 있죠.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 해외 데이터센터 구축이 늦어져 수요 증가세가 둔화될 수 있고, 칩플레이션이 소비자 물가를 자극해 전반적인 기기 수요를 눌러버리는 역풍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건, 사상 최대 실적이 발표된 날 정작 삼성전자 주가는 하락했다는 점이에요. 시장은 이미 좋은 실적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고, 매출 같은 일부 지표가 가장 낙관적인 전망에는 못 미쳤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실적이 좋다는 것과 앞으로도 계속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다른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죠.

반대편의 논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은 여전히 확장 중이고, HBM 생산 능력은 이미 상당 기간 예약이 차 있습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장당 메모리 탑재량이 늘어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수요의 바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전망이죠.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삼성의 89조라는 숫자는 우연이 아니라, AI가 반도체를 삼키는 방식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점이에요. AI가 더 많이 기억하고, 더 길게 생각하고, 더 스스로 판단하려 할수록 그 아래에서 필요한 반도체의 양은 계속 늘어납니다.

그래서 지금 반도체를 읽는다는 건, 결국 AI가 어디까지 갈지를 읽는 일과 같습니다. 다음 분기, 이 곡선은 계속 위를 향할까요? 아니면 우리는 지금 슈퍼사이클의 정점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걸까요. 그 답은 삼성의 다음 실적이 아니라, AI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더 깊이 들어오느냐가 먼저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출처 — 이 글은 삼성전자 2026년 2분기 잠정 실적 공시와 WSTS 시장 전망, 국내외 반도체 업계 보도를 종합해 재구성했습니다. 수치는 발표 시점 기준이며, 분기 실적과 메모리 가격은 빠르게 변동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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